최혜영
Choi Hyea-yeong
우리는 퀴어하게 오래오래
2020.02.01 - 02.29 스페이스산호 제주
기획의 말 / 최혜영
“강정에서 이런 전시해도 괜찮을까요?” 작년 12월 서울 ‘더스크랩: 해피투게더’에서 만나 스페이스산호 전시를 제안했을 때 김민수 작가가 처음 질문한 말이었다. 이런 전시가 뭘까. 선뜻 전시를 제안한 사람으로서 고민이 들었다. 퀴어(Queer)란 ‘이상한’, ‘기묘한’, ‘수상한’ 등의 뜻을 지닌 단어로, 성적 소수자에 대한 모욕과 경멸의 표현이었지만 1980년대 미국의 성적 소수자 활동가, 연구자, 예술가들은 퀴어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전유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비순응적이고 비규범적이라고 여겨지는 성별 정체성 또는 성적 지향을 지닌 이들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 퀴어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간성, 무성애자, 정체성을 탐색하는 이들 등 성적 소수자 전체 또는 당사자 개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활용되기도 한다.(출처: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이번 전시는 열두 장의 사진을 여섯 장의 렌티큘러로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렌티큘러는 입체 렌즈를 통해 착시를 주고 이로 인해 사진이 여러 장 겹쳐 보이게 한다. 관객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사진들이 움직이고 장면이 변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수많은 레이어들이 움직이면서 보이는 것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수많은 시간과 장소와 경험들이 교차되기 때문이다. 2018년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렸던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사진은 동일한 장소에서 시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커다란 무지개 깃발이 광장을 가로지르고 사람들이 움직인다. 제주퀴어문화축제에서 서클댄스를 추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두 장은 이 도구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전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전주 한옥 마을을 통과하고 있는 전주퀴어문화축제 사진은 1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그 장소와 사람들이 포함한다. 외에도 다른 지역 퀴어문화축제에서 매번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도 있다. 한편, 2018년 혐오 세력들의 폭력과 방해로 무산된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는 ‘우리는 강하다’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전시를 보는 관객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또 전시장 정면에는 2017년부터 매년 치뤄온 제주퀴어문화축제 사진들이 함께 전시된다.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응원하며 서로의 용기가 된 순간들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제주에서 퀴어문화축제의 존재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사람들의 표정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사실,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현실을 선택하여 그 시간을 고립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진은 당시의 현장을 잘 보여주지만 이미 과거가 된 순간을 관객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순간을 기록하거나 과거의 사실적 경험을 보여주는 사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과거를 지금, 여기의 시간으로 끌어오기 위한 방법으로 이 형식을 실험해 보았다.
순간 그 너머를 통해 지금 당신 옆에도 퀴어가 존재하고 함께 살고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다. 삶은 지속되기에 퀴어한 우리의 삶이 오래오래 계속 될 수 있도록,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장치들을 만들어 삶에도 연결시키고 싶다. 그렇기에 ‘이런 전시’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 서로에게 살아갈 힘이 되기를. 강정에서 이런 전시를 할 수 있어 더없이 즐겁다.
Queerly Ever After / 김민수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끝나던 동화 속 해피엔딩을 언제나 동경해왔다. 권선징악 같은 정의감에 가득 찬 결말을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단지 그런 대사들로 끝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보면 마치 나도 그들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현실을 버텨내는데 있어 행복은 어딘가 점점 나와 멀어져가는 꿈같은 무언가가 되어갔다. 행복하다고 느껴왔던 순간들은 한해를 살아갈수록 적어져 갔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행복을 담보 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을 힘겨워 해왔고,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 같다는 확신에 찬 비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걸까. 남자답지 못하다고 괴롭혀왔던 중고등학교의 동급생들, 군대에서 전화상으로 업무를 쳐낼 때 하루걸러 나에게 남잔지 여잔지를 물어봤던 사람들, 병사 휴게실 게시판에 누군가가 적어놓은 아웃팅 사건, 성소수자에 대해 1도 관심이 없는 회사에서 가끔씩 결혼은 왜 안하냐는 말을 듣는 지금까지.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나의 전부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퍼즐 조각을 어딘가 큰 결여이자 결점으로만 치부하는 일상에 나는 질식당하곤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사진을 통해 과거의 무언가로 남기는 만드는 방법을 통해 이전에 무슨 일을 겪었고 일어났는지를 기억하고 추억하곤 했다. 고정되어 남겨진 순간들은 편향된 나의 기억력, 혹은 좋았던 순간들은 빨리 잊어버리고 나빴던 일들만 오래오래 간직하는 좋지 않은 습관으로 인해 촉발되는 우울감들로부터 숨통을 트기 위한 좋은 수단이 돼주었다. 10년 넘게 카메라를 쥐며 셔터를 누르면서 직접 담은 순간들을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해나가는 것은 언제나 눈물겨움을 동반한다.
성소수자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열리는 한국 각지의 퀴어문화축제는 나에게 참가할 때마다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는 행사이다. 서울서 삼거리소극장에서 홍대입구까지를 회차 하는 273버스를 탈 때마다 2013년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열렸던 퀴어퍼레이드를 자연스레 떠올린다. 해운대 구남로 광장을 거닐 때 마다 이제는 괴롭고 혼란스러웠던 고등학교 시절이 아니라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거닐던 부산퀴어문화축제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퀴어문화축제라는 행사를 통해 처음 가보았던 전주는 사람들이 함께 쥐고 걸었던 대형 무지개 깃발이 통과하던 한옥마을의 모습으로 선연히 기억되고 있다. 그 희열과 감동에 사로잡혀 있다고 형언하기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나를 계속 이 축제를 찾아다니게 만들었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각지를 돌아다니는 동안, 그곳에 “우리”가 있었고, 그곳에 “우리” 가 무엇을 위해 모여 있는지에 대한 기록은 변하지 않는 과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앞으로를 살아내고 버티기 위한 힘이 되어 준다. 매 축제를 갈 때마다 반가이 서로를 맞이하는 얼굴들, 그 하루 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 혐오와 차별에 맞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휘날리는 다양한 색깔의 깃발들 속에서 나는 주체 할 수없는 벅차오름에 압도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는 아니지만 그 순간들은 나에게 있어 해피엔딩보다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이번 전시는 퀴어문화축제에서 내가 기록하고 추억하던 ‘순간’이란 개념을 확장시키고, 그 너머를 보여주고자 하기 위해 어느 한 가지 실험적인 시도를 해 보았다. 순간은 말 그대로 이전까지 내가 다루어 왔던 ‘정말 찰나의 짧은 동안’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공통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일련의 시간적 흐름을 뜻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과거의 한 장면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의 기다림과 설렘이 되기도 한다. 한 프레임 안에 엇비슷한, 혹은 완전히 다른 두 장면이 천천히 교차해 가는 것을 보며 내가 기록한 순간들 속에 다녀와 주길 바란다.
행복하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는 이 세상에서, 나는 사람들이 그저 행복했으면 하는 무책임하고 허무한 바람보다는 자신을 잃지 말아달라는 더욱 근본적이고 간곡한 부탁을 하고 싶다. 자기 자신답게 살 수 있도록 한사람 한사람이 용기 내어 걸어 나와 함께 살아가길, 나아가길 바란다.
나는 “우리들”이 끝끝내 퀴어로 살아주길 바란다. 살아 남아주길 바란다.
김민수
20살 끝 무렵 옷장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고쳐 쓰기 시작하면서 찰나의 우연이 가져다주는 순간을 운 좋게 남겨오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여러 행사, 그 중에서도 퀴어문화축 제로 널리 알려져 있는 국내/해외 Pride Parade를 중심으로 기록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19년까지 서울, 대구, 부산, 제주, 전주, 인천, 광주, 경남 퀴어문화축제에서의 공식촬영 및 프레스 촬영을 진행해 왔습니다. 남자를 좋아합니다. 다만 본인이 남자인지에 대하여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의심받는 동시에 스스로도 질문하며 답을 내리지 않으려 합니다. 저라는 사람을 풀어낼 때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논바이너리, 퀘스쳐너리, 젠더 논컨포밍이란 단어들이 이제는 더 익숙한 것 같아요.
hihihi1987@hanmail.net Twitter/Instagram @queeralbum_k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