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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했다 

​2019.07.27 - 09.04 스페이스산호 제주 


기획의 글 _ 최혜영


          허란은 ‘어느 하나 시리지 않은 현장은 없다며 이 풍경을 어떻게 드러낼지, 어떻게 드러내지 않을지를 고민’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누군가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풍경과 사물들에 마음을 주고 누군가는 보았을 풍경이지만 다르게 다가오는 감정들을 살핀다. 허란은 사진을 통해 ‘풍경의 말을 흩뿌린다’고 표현하지만 오히려 더 분명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권하형은 오키나와 사진들을 통해 미군기지와 이웃하고 있는 풍경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오키나와 전쟁을 겪은 풍경과 여전히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누구에게나 ‘풍경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됐을 때 시선이 확장된다. 그 속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진이 말을 건넨다’는 말은 작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일까, 사진 속 피사체 혹은 풍경을 이해하는 것일까. 권하형, 허란 이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보여주려고 혹은 감추려 할까. 자신들의 작업을 모색하고 탐색하는 과정일까. 어떤 언어들로 이 풍경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를 통해 이들이 건네는 풍경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만약 응답해야 한다면 기꺼이 그러하기를.

작업노트 / 권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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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공평하지 않았다. 앎과 무지의 경계는 뚜렷했다.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풍광 앞에서 나는 다양한 감정을 마주했다. 
어떤 마음은 들킬까봐 가만히 좋아했다. 여전히 미군기지 안의 오키나와, 풍경이 되어간 아픔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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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내 곁에는 다행히 통역사가 있었다. 그는 능숙한 일본어로 현지의 노인에게 길을 물었지만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노인은 오키나와어를 쓰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불통- 왜 오키나와인가. 왜 오키나와와 일본은 다른가. 
활자로, 지식으로 알았던 오키나와가 무너지고 새로운 감각이 열렸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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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TOGUCHI, YOMITAN, NAKAGAMI DISTRICT, OKINAWA 904-0315”
네비게이션은 정확히 도구치 해변을 가리킨다. 두 번, 세 번 실패 없이 도착한다. 해변에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미군과 캐치볼을 즐기는 가족 들이 풍경을 즐기고 있다. 나는 그 곳에서 바비큐를 먹었다. 누군가 오키나와를 간다면 꼭 가보라고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도구치 해변은 태평양 전쟁 중 단 하루 동안 6만 명의 미군이 상륙했던 곳이다. 여전히 네비게이션은 반짝이는 해변을 가리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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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비극을 들려주세요. 자식 손자세대까지 계속 이야기해주세요. 나미히라(오키나와현 나카가미군 요미탄손의 한 지명)의 치비치리동굴 은 우리 오키나와에 사는 자들 깊은 마음 속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는 울고 있습니다. 울지마라 치비치리여- 평화를 세상에 바라고 전쟁의 비극을 세상에 알리는 곳이 되어라 치비치리여-’ (치비치리동굴 앞 팻말에 쓰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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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누구나 갈 수 있고, 누구도 갈 수 없는’ 누군가 말했다. 
오키나와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철조망 너머에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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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지닌 ‘류큐 왕국’이었다. 1609년 일본 가고시마의 주에게 정복되고, 1879년에는 열도 전체가 일본의 행 정구역인 ‘오키나와 현’으로 편입되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이곳에 군사기지를 세워 아시아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다. 전쟁이 막바 지로 치닫던 1945년, 미군의 상륙작전으로 오키나와에서 전투가 벌어지면서 미국일본 양쪽 군인 10만여명과 오키나와 주민 12만 여명이 죽 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의 포격에도 죽고, 미군에게 협조할 것을 의심한 일본군의 총격에도 죽었다. 심지어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오키 나와 주민들끼리 서로 죽이는 비극까지 벌어졌다. 일본이 패망한 뒤 오키나와는 미국이 다스리는 지역이 되었으며, 미국의 군사 기지로 사용되 었다. 1972년 오키나와는 일본에게 반환되었지만, 미군기지는 여전히 남아 주민들의 생활에 큰 향을 끼치고 있다.




작업노트 / 허란 


기억은 흐릿해서 슬프고 어떤 기억은 너무 뚜렷해서 아린다.
흐릿한 기억은 잊혀질까 흐려질까 그러다 사라질까 두렵다.
생생하게 남은 뚜렷한 기억은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린다.
나는 나의 생각을 흩트려 뿌려 놓는다.
풍경의 말들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은 없다.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이 없으며, 오히려 사라진 경우가 많다.
풍경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 풍경 어느 곳 하나 아닌 곳이 없다. 그 풍경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아름다운 곳은 더 시리다. 아픈 기억이 없는 곳이 없다.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내가 알 수도 없는 슬픔은 가늠할 수도 없다.
참혹하게 찢기고 밝히고 사라지고 더 이상 볼 수 없는 풍경으로 바뀌고,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
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는 목격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담을 수 없다.
어느 곳 하나 시리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에 그 동안의 머릿속 생각이 지워진다.
이 풍경을 어떻게 드러낼지, 어떻게 드러내지 않을 지를 고민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풍경을 관람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지를 고민한다.
누구나 지나쳤을지 모르는 풍경과 사물들.
그들도 보았을 풍경이지만 다르게 다가오는 감정의 이미지들을 본다.

그리하여, 난 풍경의 말들을 들여다 본다.

주최 : 피스아일랜드      주관 : 스페이스산호 강정친구들      후원 : 강정친구들 문화체육관광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문화예술재단

사건이 발생했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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