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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하와이

2019.04.14 - 05.14 책방무사 제주


기획의 말 _ 최혜영

          학교 이름을 단 고속버스가 줄줄이 제주를 누빈다. 풍경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매년 어김없이 수학여행 철이 돌아온다. 4월의 제주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스산하고 적막하다. 올해는 제주 4·3 71 주년이 되는 해이며 세월호 참사 5주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과거와 함께 사는가.’, ‘현재는 과거의 어떠한 시간 위에 만들어지는가.’ 이런 질문을 품고 홍진훤 작가의 작업「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를 보았다. 작가는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단원고 수학여행 일정표대로 학생들이 가려고 한 곳에 갔고, 묵기로 한 곳에서 잤고, 먹으려던 식당에서 먹었다. 그가 촬영한 사진들은 무언가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쓸쓸하고 고요했다. 프레임 안에 강제적으로 인물이 사라지고 풍경만 남았다는 묘한 슬픔과 사진을 한참 보며 제주에 이런 장소가 있었나 싶은 곳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다섯 번 째 봄을 지나며 ‘기억한다’는건 어떤 일일까를 다시금 생각한다. 우리가 ‘기억하겠다’고 말할 때 기억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며, 이후의 시간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기억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문득 아이들이 묵기로 예정했던 숙소 이름이 궁금해졌다. 사진 속 숙소는 곱게 개어진 이불 두 채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제주에서 세월호 전시를 준비하는 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전시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다. 제주의 미래를 이른바 ‘하와이’로 만들겠다는 정치가들을 보며 우울해졌고, 파헤쳐지는 숲과 제2공항이 들어오면 사라질 마을과 오름들, 부재하고 사라지는 것들이 제주의 미래로 다가왔다. 그해 봄, 안개가 자욱하던 바다는 배를 그대로 가라 앉혔다. 모두가 목격했던 이 사실 앞에 일상은 크게 흔들렸다. 아직 해결된 것은 많이 없다. ‘잊지 않겠다’는 그 말이 쉬이 잊혀지는 시간 속에서 개개인의 몸에 각인되는 시간으로 남기를 바라며 2019 년 봄, 제주 서귀포시 성산에 있는 책방 무사에서 세월호 전시를 연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_ 홍진훤

          제주에서 세월호의 흔적을 찾아보겠다고 무작정 나선 것부터가 문제였다. 한동안 별생각 없이 잘 살다가 2주기라는 시간의 토막에 마음이 동해 제주행 비행기에 오른 것부터가 문제였다. 멍하니 제주공항 흡연실에 앉았다. 무언가를 찾으러 왔는데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막막한 마음에 제주항으로 향했다. 도착하지 못한 배를 떠올렸지만, 그곳에 무엇인가 있을 리 없었다. 주차장에는 텅 빈 셔틀버스 한 대뿐이고 여객 터미널에는 지루하게 TV를 보고 있는 몇 명의 직원들뿐이다. 적막한 터미널 벤치에 앉아 창문 너머 바다를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여기는 왜 사람이 없지?”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심코 던진 질문의 무게가 나를 누른다. 그 답은 알고 있었지만, 그 질문을 알지 못했다. 없음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없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주차비를 받는 백발 노인에게 900원을 건네고 항구를 나와 2014년의 수학여행 일정표를 구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렇게 한동안 제주를 드나들었다. 아이들이 갔을 관광지를 방문했고 아이들이 봤을 풍경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묵었을 숙소에서 잠을 자고 아이들이 먹었을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넘쳤고 무수한 셀카봉은 이곳에 내가 존재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틈에서 나는 시커먼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의 부재를 증명하기 위한 연신 셔터를 눌렀다. 지금은 그때와 상관없는 시간이지만 다시 4월을 앞둔 지금은 그때와 다르지 않은 시간이기도 하다. 여기는 그들과 상관없는 공간이지만 누구도 도착하지 못한 여기는 모두가 머물러야 했던 전부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잠들었을 그 방에 차곡차곡 개어져있는 이불들을 쳐다본다. 아무것도 아닌 검은 풍경에 2년이라는 시간이 물질로 다가온다. 결국 나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가 답을 알지만 모두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안산의 하늘을, 진도의 바다를, 제주의 바람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는 할까?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나는 쉬지않고 질문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란걸 이미 알았기 때문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이 시간과 공간에 누군가 마디를 정해둔 것은 참 다행스럽고 잔인한 일이다. 그 덕에 어쩔 수 없이 매년 4월을 맞이한다. 애초에 찾아야 할 것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질문처럼 없음을 찾아야 하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홍진훤

인간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버린 빗나간 풍경들을 응시하고 카메라로 수집하는 일을 주로 한다.  <임시 풍경>(2013), <붉은, 초록>(2014), <마지막 밤( 들)>(2015), <쓰기금지모드>(2016), <랜덤 포레스트>(2018)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다. <지금여기>, <docs>등의 공간을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며 이런저런 전시와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때로는 프로그래밍을 하며 플랫폼을 개발하고 가끔은 글을 쓰고 또 가끔은 요리를 한다. jinh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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